최근 몇 년간 우리는 세계 경제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은 무역전쟁의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미-중 무역분쟁부터 시작해 코로나19를 거치며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과정을 목격했고 이제는 이러한 변화가 가져올 장기적인 경제 지형 변화에 대해 예측할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전 세계 경제는 지금 '글로벌화'에서 '지역화' 또는 '친구끼리의 무역'으로 방향을 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의 투자 방향과 비즈니스 전략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오늘은 무역전쟁 이후 글로벌 경제가 어떻게 변화할지,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국내 경제와 투자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분석해 보겠습니다.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탈중국화와 지역 블록화
2018년부터 본격화된 미-중 무역전쟁은 단순한 관세 분쟁을 넘어 기술 패권과 안보 문제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시작된 이 갈등은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지속되었고, 2024년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글로벌 기업들은 '차이나 플러스 원(China+1)' 전략을 넘어 '차이나 마이너스(China-1)' 전략까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애플은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아이폰 생산의 25%를 인도로 이전할 계획을 발표했으며, 삼성전자는 이미 2019년 중국 내 마지막 스마트폰 공장을 폐쇄하고 베트남과 인도로 생산기지를 이전했습니다.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글로벌 기업들의 약 93%가 공급망 다변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비용 절감 목적이 아닌 '회복력(resilience)'과 '안정성(stability)'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WTO 자료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24년 사이 지역무역협정(RTA)의 수가 376개로 증가했으며, 이는 2000년대 초반 대비 4배 이상 증가한 수치입니다. 이는 글로벌 무역이 특정 지역 블록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기술 패권 경쟁과 경제안보의 부상
무역전쟁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기술 패권을 둘러싼 경쟁입니다. 특히 반도체, 인공지능, 5G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2022년 '반도체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을 통해 자국 내 반도체 생산에 약 527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으며, EU도 '유럽 칩 법안(European Chips Act)'을 통해 430억 유로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중국 역시 '중국제조 2025' 계획을 통해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쟁은 단순한 산업정책을 넘어 국가안보와 직결된 '경제안보' 개념의 부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제안보'는 이제 각국 정부의 핵심 정책 목표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전략물자에 대한 규제와 자국 기업 보호 정책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미국이 2023년에 발표한 수출통제 강화 조치로, 중국으로의 첨단 반도체 및 관련 장비 수출을 제한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국제 반도체산업협회(SEMI)에 따르면 2024년까지 약 300억 달러 규모의 시장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되었었습니다.
인플레이션과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화
무역전쟁과 공급망 재편은 불가피하게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을 증가시켰습니다. 저비용 생산 체계의 붕괴와 '생산의 근접화(nearshoring)' 전략은 단기적으로 생산 비용 상승을 초래했습니다.
실제로 IMF 데이터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글로벌 평균 인플레이션율은 약 8.7%를 기록했으며, 이는 2010년대 평균인 3.5%보다 크게 높은 수치입니다. 주목할 점은 2024년 들어 인플레이션이 완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무역분쟁으로 인한 구조적 요인들이 지속되면서 '새로운 정상(new normal)'으로 약간 높은 인플레이션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또한 금융시장에서는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금융 다변화' 움직임도 관찰되고 있습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미 달러의 국제 외환 보유액 비중은 2000년 71%에서 2023년 말 기준 59%로 감소했습니다. 중앙은행들이 금 보유량을 늘리는 추세도 주목할 만한데, 세계금협회(World Gold Council)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중앙은행들의 금 순매수량은 1,079톤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이 점차 '다극화'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는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리스크 관리 접근법과 자산 배분 전략의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미래를 위한 투자 전략과 기회
무역전쟁 이후의 글로벌 경제 변화는 도전과 함께 새로운 기회도 제공합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현명한 투자 전략은 무엇일까요?
첫째, 공급망 다변화와 리쇼어링(reshoring)의 수혜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베트남, 인도, 멕시코 등 새로운 제조 허브로 부상하는 국가들의 산업 인프라와 관련된 투자 기회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베트남의 경우, 2024년 1분기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전년 동기 대비 13.4% 증가한 64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둘째, 전략적 중요성이 높아진 산업에 대한 투자를 고려해 볼 만합니다.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등 국가안보와 연결된 핵심 산업은 각국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같은 정책은 친환경 에너지와 전기차 산업에 대한 막대한 지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셋째, 경제 블록화에 대응한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중요합니다. 지역별로 서로 다른 성장 패턴과 정책 방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므로, 단일 경제권에 집중된 투자는 리스크를 높일 수 있습니다. 모건스탠리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자산배분 전략에서 지역적 다변화의 중요성이 2020년 이후 약 30% 증가했다고 합니다.
넷째, 인플레이션 헤지 자산에 대한 배분을 고려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인플레이션 기간 동안 실물자산, 상품, 인프라 관련 투자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성과를 보여왔습니다. 블랙록의 2024년 글로벌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금과 같은 전통적인 안전자산과 함께 디지털 자산에 대한 기관투자자들의 관심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무역전쟁이 실제로 미국과 중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A: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연구에 따르면, 무역전쟁으로 인한 관세는 미국 소비자와 기업에 연간 약 1,080억 달러의 추가 비용을 발생시켰습니다. 중국의 경우,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자료에 의하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약 350만 개의 일자리 손실과 GDP의 0.5% 감소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두 국가 모두 다양한 정책적 대응을 통해 충격을 일부 상쇄했으며, 특히 중국은 내수 시장 확대와 기술 자립도 강화 정책을 통해 대응해왔습니다.
Q: 한국과 같은 중견국가들은 미-중 갈등 속에서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요?
A: 한국과 같은 중견국가들은 '전략적 모호성'과 '경제적 다변화'를 동시에 추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보적으로는 기존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한국의 대중국 수출 의존도는 2018년 26.8%에서 2024년 1분기 기준 21.2%로 감소했으며,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으로의 수출 비중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다변화 전략은 장기적 무역 안정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됩니다.
Q: 무역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변화가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지속될까요?
A: 경제학자들의 견해는 다양하지만, 대체로 공급망 재편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은 단기적 충격을 넘어 중기적으로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월드뱅크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무역분쟁과 공급망 재편은 향후 3-5년간 글로벌 인플레이션율을 약 1.0-1.5%p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기술 혁신과 자동화의 가속화가 이러한 비용 상승 압력을 일부 상쇄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Q: 미-중 갈등이 완화될 가능성은 없을까요?
A: 완전한 해소보다는 '관리된 경쟁(managed competition)' 형태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양국 모두 극단적인 경제적 디커플링(decoupling)이 가져올 손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완전한 디커플링이 발생할 경우 미국과 중국의 GDP는 각각 1.5%, 3.0% 감소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특정 첨단기술과 안보 관련 분야에서는 분리가 심화되더라도, 일반 소비재와 서비스 부문에서는 어느 정도 교류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됩니다.무역전쟁과 이로 인한 글로벌 경제 변화는 불확실성을 증가시키지만, 동시에 새로운 패러다임과 기회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투자자와 기업들이 이러한 구조적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지금, 정보에 기반한 전략적 접근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